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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환 칼럼] 봄날에 말하다 ‘화해와 공생의 길을...’
2019년 03월 20일(수) 11:43
나일환/한국지역연합방송 회장·시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바로 나를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향한 외침은 나의 절절한 외침이요, 하늘을 향해 드리는 기도는 나의 절실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은 무엇인가? 진정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사회는 병들어 썩어가고 있다.

경제 강국이 돼 살만한 나라를 만들어내고 삶 또한 풍부해진 우리의 생활에서 지금 우리가 겪는 공허감은 인간의 정신을 썩게 해 사회는 괴로움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올바른 삶의 쟁취는 풍부한 물질이 보장되고 정신적 평안함을 만들어 내는데 기인하게 된다. 그중에 중요한 정신적 안정이라는 것은 부족한 물질적인 환경 속에서 생을 유지하더라도 정신적인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만의 정신건강이아니라 나를 포함한 사회공동체의 이해와 공감 그리고 나눔과 배려 속에서 용서하는 가운데 정신적 안정이 이루어진다.

나만의 독선으로 나만이 잘살고 잘돼야한다는 편견은 사회의 악이 되고 사회를 병들게 만들어버린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느낀 것은 모두가 현명하고, 자존심도 강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되고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는 잘못된 사고로 점철돼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필수요건이라 생각하는 불상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생을 마감할 때는 모든 이들이 한결 같이 부질없는 생을 살았다 말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부질없는 삶을 살았다는 후회의 말들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의 일면을 보면서 느껴진다. 그토록 청정한 하늘을 덮어버린 미세먼지를 보면서 숨 막히는 고통을 느끼는 순간들이 바로 현시대의 실상이다. 봄날의 하늘을 바라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토록 청정한 하늘 이였는데 지금 바라보는 하늘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고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본향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신이 노여워 할 정도로 자연을 훼손시킨 인간들의 행동에 저주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신이 주신 맑은 공기가 숨쉬기조차 힘들어지고 청정한 하늘을 덮어 버린 미세먼지의 극한 상황은 인간을 병들게 만들어 심신이 괴롭다. 가난한자나. 갖은자나, 권력의 유무를 떠나서 모두에게 공평한 자연의 섭리는 신이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신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 중에 가장 고마움을 느끼는 부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일 것이다. 힘들고 외로울 때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들, 소원을 말하며 잠시 자신을 의탁하며 바라보는 하늘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있는 자들의 허세와 탐욕은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그들만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일 것이다. 미세먼지위에 청정한 높푸른 하늘의 본모습을 찾아야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순수한 본연의 마음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쓸데 없는 자존심으로 일생을 망치고 아집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깊이 반성하며 이웃과 사회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만 우리 마음속에 가려진 미세먼지가 사라질 것이다.

현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해라는 단어, ‘이해(understand)’라는 단어는 낮은 곳에(under), 서는(stand) 것이다.

하심(下心)을 갖고 세상을 접하게 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측은지심으로 상대를 바라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서로가 공감하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하나가 되는 사회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성서에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고했다. 불교에서는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유교에서는 ‘내가 원치 않은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 이슬람교는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는 자는 신앙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각 종교 경전에서는 바로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내처지로 상대를 이해하려 들지 말고 상대의 처지를 생각해 이해하고 공감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의 마음을 갖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논어 위령공편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평생을 지켜나갈 만한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 말하기를 “그것은 ‘서(恕)’이니,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으면 바로 용서라는 단어가 따른다. 역지사지의 마음을 통해서 용서의 마음이 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한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참 용서라는 것은 작게는 자신과 상대방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크게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사회 자체가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게 한다.

진정한 용서의 의미는 상처를 준 사람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것이요, 용서는 단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베푸는 선물이다.

나만이 최고요. 내 생각이 옳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사고만 버린다면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살맛나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상대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하고 그 감정이 느껴진다면 용서의 길이 열리고 서로의 갈등을 불식시켜 서로 공감하는 사회를 통한 화해와 공생의 길이 활짝 열리는 아름다운 사회건설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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