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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로 적을 벤다.
2020년 03월 26일(목) 13:03
“적의 상황은 명확히 파악되었는데, 우방의 태도가 분명치 않을 때는 반드시 우방을 끌어들여 적과 필사적으로 싸우도록 만들어야 한다. 직접 출병하여 싸울 필요 없이, 즉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얻는 방법이다.”

‘차도살인’이란 남의 손을 빌어 살인을 한다는 의미이다. 살인은 비록 잔인한 방법이나 세상에는 죽여야 할 사람들이 널려 있고, 또한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인데 무고하게 죽는 경우도 많다. 살인의 근본은 인의도덕을 추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단지 죽일 대상이 누구이고 이 사람을 죽여야 하느냐 마느냐, 즉 ‘나에게 역행하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 중국역사상 제일 보편적인 살인 원칙이다.

살인에는 현명하고 우매한 등급이 있다. 우매한 사람의 살인은 시퍼런 칼을 들고 들어가 붉은 피를 뿌리며 사람을 죽인다. 겉보기에는 영웅적이고 통쾌할지 모르나 이렇게 되면 법률적인 제재를 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남들로부터 잔인하고 난폭하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영리한 사람의 살인은 다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법률을 이용하거나 남의 손을 빌어 수행한다. 이렇게 되면 목적도 달성되고 인의도덕이라는 명분에도 어느 정도 여지를 갖게 된다. 소위 ‘살인을 할 때는 피를 보지 말아야 하며, 피를 보면 영웅이 아니다.’는 말이 매우 좋은 설명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인자 중 진회(秦檜)가 영리한 살인자를 자처한 어리석은 살인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있을 것이오.’라는 죄명으로 악비(岳飛)를 제거함으로써, 송고종(宋高宗)의 지위를 공고하게 했고, 자신은 고종을 대신한 희생양이 되어 대대손손 간신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실은 악비를 죽인 것은 송고종의 책략으로써, 진회는 군주의 악역을 담당했던 칼잡이에 불과했다.

당시 절강의 소홍성에 비석이 하나 전래하는데, 그 내용인즉 송고종이 악비를 위해 쓴 애도의 글로, 악비의 전공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찬양하고 있다. 실로 고양이가 쥐를 잡아놓고 눈물을 흘리는 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비석을 보고 후에 사람들은 모두 진회가 악비를 모함해 죽인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악비는 무고하게 죽었으며, 진회는 이렇게 무고하게 죽인 장본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식은 명나라의 사평가(史評家)였던 문형산(文衡山)에 의해 타파되었다. 그는 비석 뒤에다 ‘만강홍(滿江紅)’이란 사(詞)를 새겨 넣어, 송고종이 그의 부친과 형이 귀국해서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내용을 분명히 했다.

공자는 비록 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지만, 살인 기술에 있어서는 매우 유치했다. 그는 줄곧 벼슬 한번 못하고 있다가, 졸지에 대사구(大司寇)란 귀한 몸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시 유명했던 소정묘(少正卯)를 죽인 것이 천고의 의안(疑案)으로 남아 있다. 그의 살인 명분은 무엇인가?

그의 문인(門人)이 공자에게 물었다.

“소정묘는 노(魯)나라의 문인인데 선생님께서 집정하시자마자, 그를 죽이셨으니 무슨 실수가 있지는 않았습니까?

공자는 대답했다.

“사람에게 다섯 가지 큰 악이 있는데 여기서 절도는 제외시킨다. 첫째, 마음이 삐뚤고 험악함이요, 둘째, 행동이 괴팍하고 고집스러움이요, 셋째는 말이 위선적이면서 거침이 없는 것이오, 넷째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으면서 장황한 것이요, 다섯째는 정의롭지 못함을 쫓으면서 윤택하게 치장을 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만이라도 사람에게 있다면 군자로서 자격이 없고 주살되어야 마땅하다.”

이 다섯 가지 조건을 보건대 소정묘는 군중들을 선동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군중에게 유언비어를 날조해 현혹하지도 않았다. 단지 유일한 살인 죄목으로는 소정묘가 공자보다 더 박학하여 공자가 정치를 하는데 장애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위 “평범한 사람은 죄가 없으나 재능이 있으면 죄가 된다.”는 ‘재능죄’에 해당하는 셈이다. 여기서 공자의 패도욕(覇道欲)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알 수 있다.

비교적 영악한 살인자는 조조(曹操)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예형(?衡)을 죽일 때 유표(劉表)의 손을 빌었고, 양수(楊修)를 죽일 때도 “군심을 현혹했다.”는 죄명을 씌었다. 감쪽같이 당당하게 죽여, 그의 살인은 정당화 되었다. 게다가 조조는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자비까지 연출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점이 ‘간웅(奸雄)’적인 모습인 것이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평론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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