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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배경과 정신
2021년 03월 02일(화) 18:47
올해 3월 1일은 3·1절 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2주년이 되는 날이다. 3·1절은 1919년 3월 1일에 있었던 항일 독립운동 일을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이다. 일본은 1910년 국권 침탈로 우리나라를 빼앗아 식민지통치를 하면서 고유문화를 말살하고 한민족의 토지 금융 광산 철도 등 모든 분야의 이권을 독점경영 하면서 한민족의 경제 발전을 극도로 제한하였었다.
3·1운동은 일제 강점 시대에 가장 빛나는 민족해방운동으로 모든 계층이 참가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그 규모 또한 전국적이었다. 또한 조선 민족이 일본의 통치를 달게 받는다고 한 일제의 선전이 허위였음을 일시에 폭로한 운동이었다. 이러한 3·1운동은 이후에도 여러 형태로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이 아니라 좌 ․ 우익의 사상적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1910년 이래 한국은 일본의 조선총독부 통치하에 놓여 있었는데,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한민족의 항일 독립투쟁은 각지에 의병(義兵)을 낳고 널리 민족계몽 운동으로 발전하여 갔다. 일본은 이와 같은 민족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헌병 경찰제도를 시행하여 항일 독립운동 투사들을 학살·투옥하고, 모든 결사(結社)와 언론 활동을 금지하였다. 교육 정책에서도, 우민정책을 실시하여 민족의식의 성장을 억누르고, 고도의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박탈하였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해외로 망명하고, 특히 무력투쟁으로 혹은 외교활동을 통하여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한 선두에 섰다. 한편 국내의 대다수 농민은 소작농(小作農)·화전민(火田民) 등으로 전락하였으며, 생활난으로 인하여 만주 등지로 유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일본의 폭압(暴壓)은 지식인 · 학생 · 종교인뿐만 아니라, 농민·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반일감정(反日感情)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이 일본의 무단정치를 겪고 있을 무렵,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고, 1918년 1월 미국 대통령 윌슨은 14개 조로 된 전후(戰後) 처리 원칙을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한다.’라고 하는, 민족자결(民族自決)의 원칙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세계의 피압박민족에 대한 자극제가 되었다. 이 민족자결주의의 새로운 원칙은 항일투쟁을 계속해오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조류 속에서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高宗皇帝)가 갑자기 승하(昇遐)하게 되자 일본인들에 의한 독살설(毒殺說)이 유포되어 한민족의 일본에 대한 증오는 극도에 달하였다. 고종황제의 人山(장례) 일이 3월 3일로 정해지자 손병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독립 선언문을 작성하고 전국에 있는 천도교 불교 기독교인들이 서울로 모이게 되는 것을 기회로 삼아 3월 1일에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게 되었었다. 이것을 일본은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였으나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게 되었는데 이것이 3 ․ 1운동의 배경이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일본이 무력으로 진압하고 억압하자 애국지사들은 해외로 나가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독립운동을 했으며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으로 우리는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해방 후 3·1운동의 날을 3·1절 국경일로 정해 국가적인 행사를 하면서 3 ․ 1운동 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으며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 있다.
이러한 3 ․ 1절을 지금까지 우리는 국기를 게양하는 날로 생각해 왔으며 3·1절의 배경과 경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면서 역사 속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고 있으면서 국기 게양조차 하지 않는 가정이 많다.
우리는 일본에 1910년에 나라를 빼앗기고 자주독립을 하기 위해 일본에 비폭력 평화주의 원칙에 의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고 전국 가지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일본의 무력진압에 맞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항일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8·15광복을 맞이하게 되었고, 정부 수립 후는 민주주의와 역행하는 독재와 맞서 4·19학생 의거로 이어졌고, 군부 독재와 항거한 5 ․ 18 광주 항쟁으로 이어져 오면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국민 자주독립 정신으로 맥을 이어 오고 있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올해 102주년 3·1 절을 맞이하면서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 비폭력 평화주의 원칙의 3·1운동 정신을 준수하면서 우리 민족의 민주주의 국가 수호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기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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