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도민일보]김범남 기자= ‘슬픈 시간의 기억’은 의식과 잠재의식의 중첩을 통해 새로운 기법으로 형상화한 김원일의 새 연작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죽음과 맞닥뜨린 네 명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것들은 한 치의 꾸밈도 없어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낸, 살고 있는 그늘진 얼굴들의 자화상이자 우리 모두가 반드시 거쳐야 할 삶과 죽음 사이의 비의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슬픈 시간의 기억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안다, 나는 두려워요,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등 네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돼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유료 양로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료 양로원인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 외에 제각각 다른 인생을 살아온 만큼 함께 공유할 기억이 없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지나간 시절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추억이란 것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정당화시키고 미화시킨다.

소설 주인공들의 일생에 투영된 삶의 모습은 육체적 욕망과 그 열락, 그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것의 실체였던 육체의 소멸에 관한 것이다.

이 책속에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있다. 늙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닥친다.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모든 사람에게 닥친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의 고백처럼 “죽는다는 게 두려워 그렇게 참고 견디지만 죽음은 의외로 빨리 닥친다. 몸이 죽으면 혼미한 정신도 체념 상태가 되어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마치 블랙홀 같은 흡인력을 가져 독자가 한 편의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문장을 놓을 때까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술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더욱이 이 책은 읽으면 김원일의 소설 문장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관능적이며 섬세하다. 여기에 여성 화자에 의한 내면적 독백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도 색다르다.

소설가 김원일은 1942년 경남 김해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고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

노을, 바람과 강, 마당깊은 집, 늘 푸른 소나무, 아우라지로 가는 길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우경문학예술상 외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