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도민일보]김범남 기자= ‘바이올렛’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시적 울림의 문체, 풍성한 묘사의 소설 언어로 일구어낸 작가 신경숙의 네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표제인 바이올렛은 다양한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사전의 정의대로 꽃의 일종이며 보라색이라는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고 수줍은 여인을 은유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것은 자연스럽게 폭력(violence)과 연결된다.

작가는 이런 다채로운 의미가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여러 삽화와 비유를 통해 긴밀하게 형상화해놓고 있다. 또한 바이올렛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비극적 운명의 여인 이오와 중첩됨으로써 그 내포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한복판, 그 익숙한 공간이 돌연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모습을 달리해가며 벌어지는 신화적 비극이 상연되는 무대로 탈바꿈한다.

따라서 바이올렛의 보랏빛은 수난의 핏자국이자 소외된 자, 억눌린 자의 멍자국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동시에 처절하며 애잔한 동시에 섬뜩하다.

신경숙의 소설은 처음부터 독자를 휘어잡아야 한다거나 도중에서 독자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나 잔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느릿느릿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한테까지 한눈을 팔며 소요(逍遙)하듯 따라가게 만든다. 짜임새 없이 마음가는 대로 쓴 것 같은데 읽고 나면 바로 그 점이 이 작가만의 구성의 묘였구나 싶어 못내 감탄을 하게 된다.

‘바이올렛’의 그녀, 오산이는 한순간 온몸을 덮쳐온 격렬한 욕망에 붙잡혀 도시 한복판을 걷는다. 걷고 떠돈다. 몸을 기울여도, 아무리 내몰아보려고 해도 그 욕망은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이 거리에서 사라진다.

그 여자의 기억 밑바닥엔 어린 시절 미나리 군락지의 푸른 풍경이 있다. 그 풍경은 그러나 상처다.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적 부재, 늘 그녀를 혼자 두고 떠나버렸던 어머니. 이 상처의 기억들은 그녀를 식물처럼 살게 한다.

그녀는 화원에 꽃을 돌볼 종업원으로 취직한다. 어느 날 이 꽃집에 잡지 화보에 실을 바이올렛을 찍으러 사진기자가 찾아오고 이후 그들은 밤거리에서 재회한다. 무심히 그녀의 팔뚝을 쓸어내린 그 남자의 손길에 그녀의 내면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불길에 휩싸인다. 그 여자에게 바이올렛은 이미 그녀의 분신이자 사무친 욕망의 대체물로도 여겨진다.

신경숙 중편 겨울 우화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풍금이 있던 자리, 딸기밭, 깊은 슬픔,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등을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과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