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남도민일보] 지난해말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을 때 앞으로 이 정권의 말로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통치자를 곧바로 겨냥했던 혼용무도는 혼용(昏庸)과 무도(無道)가 합쳐진 합성어다.
혼용은 말 그대로 어리석다는 뜻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두뇌가 모자라고 어떤 재능도 없는 상태나 사람을 가리킨다. 무도는 글자대로라면 도가 없다는 뜻인데 무도는 덕을 베풀지 않는 포악한 정치 그로 인해 조성된 암울하고 혼란한 정치상황 그런 정치를 일삼는 통치자를 나타내는 단어로 수천년 동안 수없이 사용돼 왔다.
이렇듯 대단히 부정적인 두 단어가 합쳐져 통치자에게 직격탄을 날렸으니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혼용무도’의 결과를 끔찍하게 겪고 있다.
통치자가 혼용무도하게 되는 원인을 파고들면 예외 없이 개인이나 패거리의 사사로운 욕심과 만나게 된다. 선현들은 이런 문제의 근원을 가정과 교육에서 찾고 있다.
혼용무도한 통치자들 대부분이 부끄러움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즉 후천적 노력에 의한 자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런 결론은 왕조체제에서나 지금 우리 현실에서나 하등 다를 바가 없고 그 무치의 결과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리석고 못난 혼군은 사사로운 욕심에만 급급한 간신들을 길러내는 토양이 된다. 이런 점에서 혼군과 간신은 이란성 쌍생아이며 이 쌍둥이가 손을 잡으면 나라가 절단난다.
“통치자로서 제거해야 할 인물에는 5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째가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이고 둘째가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이고 셋째가 행동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이고, 넷째가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이고 다섯째가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이다.”
공자는 나라와 백성을 해치는 간신을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꼽았다. 공자의 이 논리를 지금 우리 상황에 대입시킨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간신들이 득세하게 만드는 또 다른 토양이다. 자질이 떨어지는 못난 통치자가 간신의 1차 토양이라면 이런 자를 통치자로 만들어내는 우리 내부의 문제는 2차 토양이라 할 것이다. 망국적인 지역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념몰이, 독재에 대한 향수와 노예근성 등 많은 문제가 간신 출현의 2차 토양이다.
그리고 여기에 극단적 이기주의와 무한경쟁만을 부추기는 교육, 이런 문제점들을 외면하고 있는 정치가와 지식인들 또한 더 심각한 토양이 되고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 전체를 썩게 만드는 이런 토양들을 치워버리지 않고는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나랏일을 하는데 학식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기본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외국과의 협상에서 국제 공통언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해 국제적 망신살이 뻗친 일들이 지금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걸 보면 우리에게도 복렵시랑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 온 나라와 국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처참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초래한 데는 그런 통치자를 뽑은 국민들의 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처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이 기회에 썩은 토양을 갈아치우고 보다 확고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해 혼군과 간신들을 공소시효없는 역사의 법정에 세워 단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