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석상에서 적의 기를 꺾다 (折衝樽俎)
2018년 10월 11일(목) 19:34
이정랑
言論人(中國古典 硏究家)
 『전국책』 「제책 齊策」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晉) 평공(平公)이 제나라를 칠 준비를 하면서 대신 범소(范昭)를 보내 제의 허실을 염탐해오도록 했다. 제나라 경공(景公)이 베푼 연회 석상에서 범소는 제나라의 위세를 시험해볼 요량으로 두 차례 경공에게 모욕을 주었다. 범소는 처음에 경공의 술잔으로 술을 마셨고, 이어서 취한 척 일어나 춤을 추면서 악사에게 주 천자의 음악을 연주하라고 했다. 그러나 경공의 술잔으로 술을 마시다가 그 자리에서 제나라의 이름난 대신 안영(晏영)에게 거절당했다. 진으로 돌아온 범소는 평공에게 제나라를 함부로 공격해서는 안 되겠다고 보고했고, 평공은 정벌 계획을 취소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크게 감탄했다.

 “훌륭하도다! 술잔과 그릇 사이를 벗어나지 않고도 천 리 밖의 적을 물리쳤으니, 안자와 태사를 두고 한 말이로다.”

 ‘절충준조’라는 고사는 바로 공자의 이 말에서 나온 것이다. ‘준조(樽俎)’는 고대의 술과 고기를 담는 그릇을 말하는데, 흔히 ‘연회’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절충(折衝)’의 ‘절’은 부수거나 끊는다는 뜻이며, ‘충’은 고대에 적의 전차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상주시대 및 춘추시대는 전차가 군대의 주된 장비였고, 전투 방식도 주로 전차전이었다. 따라서 적을 제압하고 승리하는 것이 ‘절충’이다. 술자리를 베푸는 연회석상에서 외교적 담판을 통해 적의 기를 꺾고, 적의 우세를 압도하여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바로 ‘절충준조’다.

 손자는 ‘외교로 상대를 공략한다.’는 ‘벌교(伐交)’를 ‘모략으로 상대를 공략한다.’는 ‘벌모(伐謀)’의 다음 가는 투쟁 수단으로 보았다. 연회석상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도 병략가들이 추구해온 이상적인 수단이었다. 전국시대 진나라는 상앙의 계책에 따라 위나라와 제·초 등의 연맹을 흩어놓음으로써, 힘 하나 안 들이고 앉아서 위나라 서하(西河) 바깥 땅을 차지했다.

 동서고금의 정치·군사 투쟁에서 외교 투쟁이 떨어져 나간 적은 없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절충준조’를 추구하여 국가를 안정시키려는 외교 활동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현재 강대국의 지도자들은 1년에 평균 이십에서 사십여 차례의 정상 회담을 갖는다. 다자간 화담의 횟수와 회담에 참여하는 인원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 사회 집단과 사회 집단 사이에는 각자의 이익을 위한 광범위한 외교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외교 활동이나 연회석상에서의 담판들은 그 옛날 2천여 년 전 유방이 홍문에서 항우를 만나 가졌던 연회에서 항장이 칼춤을 추며 유방을 찔러 죽이려 기회를 엿보던 것처럼 검광이 번득이는 살벌한 장면도 없어졌고, 15세기 서양 군주들의 정상 회담에서 다리 위에 상대방의 저격을 피하기 위해 나무로 상자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서 두 나라 군주가 창을 사이에 둔 채 대화를 나누던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도 사라졌다. 미소 띤 얼굴로 대화를 나누면서 쌍방은 각종 수단을 운용하여 자신의 국가와 이익 집단을 위해, 정치·경제·군사 및 기타 각 방면의 이익을 쟁취하려 애쓴다. 핵 시대에 전쟁 방지를 위해, 특히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국제간의 담판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절충준조’는 정치·경제·문화·과학·기술 등 각 영역에 미친다. 상대방을 연회석상에서 제압하여 승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용인으로 결정된다. 이제는 옛날 안영이 지혜로 범소를 물리쳤던 것보다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진행되고 있는 북(北)·미(美)간의 정상회담도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적극적인 ‘절충준조’의 양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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