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복지의 선구자 충현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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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복지의 선구자 충현원 소개

설립자 박순이 선생 어머니 박애신 신실한 기독교인
27세에 남편 잃고 젖먹이 고아 도우라는 응답 받아
우월순 선교사 사택 빌려 ‘충현영아원 설립’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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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순 선교사(왼쪽부터 김율희, 유혜량, 장녀 Elizabeth(104세), 김요한) 식구들과 충현원 식구들 기념사진.
[기독미션=전남도민일보]정리/김수화 기자=한국사회복지의 선구자 ‘충현원 발전사’

1. 충현원 설립자 박순이와 어머니 박애신

박순이 선생(1921년 1월 18일 ~ 1995년 2월 1일)은 아버지 박태삼(1883년 1월 출생 ~ ?)과 어머니 박애신(1883년 12월 28일 ~ 1968년 1월 8일)의 무남독녀로 광주시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1908년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부에서 파송된 Robert M. Wilson(우월순) 선교사는 일곱자녀들을 데리고 태평양을 건너 한국 땅 광주. 양림동에서 복음 전파와 치료를 위하여 광주 기독병원장으로 취임했다.

자녀들을 돌보고 함께 동역할 신실한 한국 사람을 찾다가 박애신을 침모로 채용했다. 박애신은 신생아인 박순이와 함께 우월순 선고사댁에서 일곱 자녀들과 함께 생활했다. 당시에는 의식주 모든 것이 부족했고 박애신은 선교사 가족을 위해 한복과 자녀들의 외출복으로 세라복을 손수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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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신이 만들어준 한복을 입은 우월순 선교사 내외와 자녀들 사진.

박애신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에 다라 이를 실천하신 온화한 성품을 가지신 분으로 일곱 자녀들이 아주 잘 따랐고 ‘애신’어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1926년 우월순 선교사 가족은 여수 애양원으로 옮겼고 박애신은 Rev. Robert Knox와 Maie(Borden) Knox(1926~1940)가족의 요리사로 동역했다. 현재의 수피아여학교 강당 자리가 바로 박애신과 박순이의 집이 있었다.

이곳에서 박애신은 여수애향원등에서 발생되는 미감아들을 격리하여 돌보기도 했다고 한다. (Half a life time in Korea by Mary L. Dodson 중에서)

1996년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에 호텔이 없을 당시 서양귀빈들이 광주 방문하였을 때 박애신이 있어서 걱정 없이 서양요리를 대접하기도 했고 미국대사부인의 숙소가 마땅치 않아서 충현원이 숙소였다고 한다.

어머니 박애신의 영향으로 박순이는 어린 시절을 장로교 선교부에서 선교사들과 함께 양림동에서 생활하였으며, 1937년 수피아 고등학교 4년생 때 폐교되어 전남여고에서 졸업하였고, 1968년 수피아 개교 60주년 때에 수피아여고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영어를 잘 배워 선교사들에게 한국말 선생이기도 했고 성경학교에서는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피아노로 양림교회(기독교장로회) 성가대 반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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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경 충현원 설립자 박순이 남편 김생옥의 일본 동경 고등음악학교 졸업 공연.

박순이 선생은 피아노 연주가며 숙명여대 교수였던 노신옥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피아노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으나 어머니 박애신을 외롭게 할 수 없어서 유학의 진학을 포기하고 양림교회에서 반주활동을 했고 김필례 선생의 성악발표회 때에도 오웬기념각에서 반주하기도 했다.

1944년 음악 특히 피아노에 서질이 있었던 박순이 선생은 동경에 있는 일본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한 성악가(바리톤)이며 목포고등학교 음악교사이었던 김생옥 선갱과 결혼했다.

이 부부는 유럽으로 유학소속을 준비하던 중에 1947년 5월 순천여학교로 발령이 났고 순천여학교 음악교사로 재직 당시 광주 동방극장에서 순천여학교 학생들과 음악회를 준비하던 중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사건이 났다.

10월 하순경 광주동방극장에서 순천여학교 제자들과 함께 음악회를 열기로 되어 순천에서 김생옥, 박순이, 3세된 아들, 8개월된 딸, 네 식구가 친정어머니 박애신이 계신 광주 선교부에 잠시 지내게 된다.

그 당시 음악회 장소인 동방극장에서 영화가 절찬리에 상영되어 음악회를 3일만 연기하자고 한다. 3일 동안의 여유시간이 있어서 순천에 있는 제자들이 걱정되어 잠시 순천을 다녀오겠다고 가족을 떠난 것이 마지막 길, 비극의 길이었다.

10월 31일 사형장인 순천 죽두봉공원 사형장에서 ‘울밑에선 봉선화야’를 부르면서 처형됐다.

27세에 남편을 잃어 나멱진 두 자녀를 둔 박순이 선생에게 미국으로 철수하던 선교사들은 함께 미국으로 가서 생활하고자 제안했으나 그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녀는 광주의 길거리에 버려진 굶주리고 병든 젖먹이 고아들을 도우라는 응답을 받는다.

그녀는 한국에 남아 누구도 돌보지 않은 젖먹이 고아들을 돌보겠다며 선교사의 철수로 비어가는 우월순 선교사 사택을 빌려달라고 제안했고 허락을 받아 충현영아원을 설립 운영했다.

박순이는 45명의 고아들을 유아세례 받도록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생명존중정신으로 기르겠다고 하나님과 서약을 한다. 그 후 미국 남장로교선교회의 후원으로 신생아 황달 치료를 위한 건물을 서양식으로 1952년 건축을 시작했다.

그 건물에서는 1976년부터 고아전용 무료 아동병원을 운영하기도 했고 현재는 한국전쟁 전 후 사용되었던 고아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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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유혜량, 서한태 박사(목포고 1회졸업), 김율희.

2. 충현원 이전

‘19세기에 생명 존중 사랑을 실천한 여성 Eliza beth Johanna Shepping(서서평)이라는 외국인 선교사가 있다면 20세기에는 그 정신을 배워 그대로 실천한 박순이 선생이 있다’라고 충현원의 설립자 박순이의 업적을 광주 백년사 저자 박선홍 선생이 증언한다.

생명존중 사랑실천으로 한 알의 밀알이 된 ‘광주의 누님’이라고 불리우는 박순이 선생은(명노근, 이강재, 박선홍 선생의 증언) 고아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자 시설과 공간이 부족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결국 어머니 박애신과 자신의 서재를 털어 양림동 210번지와 210-1번지 부지와 건물 3동을 1951년 5월 1일 당시 광주 YWCA회장인 김정현 부부로부터 매입하여 거처를 새롭게 마련했다.

1952년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광주지구 선교사 커밍스, 녹스, 카딩턴, 윌슨 루트 선교사 및 백영흠 목사와 김상욱 한의사, 광주 보이스카우트 창설자인 김학준 선생이 후원 회원이 되었다.

Root(유화례) 선교사가 후원회장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19:19)는 기독교 정신을 몸소 실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영·유아들을 돌볼 수 있는 장소로 이전했다.

1953년 7월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선교사들이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그 무렵 그녀가 돌보던 아이들은 120명이나 되었다. 박순이는 생활의 한계를 부딪쳤으나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그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키울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그녀는 120명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었을까? 그녀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한국전쟁 전후에 선교사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정신으로 그녀에게 의약품, 자금, 음식, 옷 등을 지원해 주었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엔 파티를 열어 주었으며, 자주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웃음과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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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순 선교사댁에서 시작한 충현원의 모습.

미군은 만명이 넘는 아이들을 구해냈고, 1954년 6월에는 429곳이 넘는 고아원에 5만 935명 고아들의 양육을 지원했다, 박순이 선생을 도와주었던 여섯 선교사 가족들의 목록이다. 로버트 박사&베스 윌슨여사, 허브&페이지 카딩턴 여사, 딕 박사&루스 뉴스마여사 등이다. 박순이는 선교사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배웠다.

충현원이 서동과 인접한 현재의 장소로 이전한 후에는 월남댁(김인순, 1919년생)에 의하면 “충현원은 젖먹이 고아뿐만 아니라 양림동, 서동, 사동 일대와 순천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증언한다.

1970년 후반 호남신학대학이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기 전에는 충현원과 호남신학대학사이의 도로가 없었고 호남신학대학교 자리는 충현원의 고아들을 위한 과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선교사 묘역도 관리했다.

충현원에서 죽어간 500여명의 이름없는 고아들의 묘역은 현재 호남 신학 대학의 운동장으로 변해있다. 이러한 연유로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50만명의 한국전쟁고아를 추모하는 조각상을 2012년 한국전쟁 침전용사로부터 층현원에 기증받아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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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화 기자 2580@jndom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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